Tuesday 9 March 2010

철거 아파트 옥상 여기, 예술이 산다_한겨레



철거 아파트 옥상 여기, 예술이 산다
옥인동 시범아파트서 미술전 열려


“볼링 한판 치실래요?” 아파트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먼지 가득한 볼링공을 건네받는다. 이정민, 진시우 작가의 설치 작품 ‘볼링 포 옥인’은 서울 옥인동 시범아파트 철거현장을 무대로 한 전시 <옥인 오픈 사이트>(okinapt.blogspot.com)의 첫 번째 관문이다. 두 작가는 9동에서 버려진 볼링공 두개를 발견하고는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떠올렸고, ‘볼링 포 옥인’을 만들었다. 데구르르르…, 오래된 아파트의 불균질한 옥상에서 좌충우돌 구르는 볼링공의 난감한 움직임은 정주했던 자들의 행선지를 닮은 듯 헛웃음을 일으킨다. 뒤이어 “허가받지 못한 말살의 기억을 담았다”는(실은 김기덕 감독의 <빈집>살이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 ‘고스트바’(이주영, 육 킹 탄)에 머물러 제공되는 한 잔 술을 마신다. 그리고 오후 4시, 버스정류장 정자에 모여 철거 아파트의 3, 4, 5, 6, 9동 등을 둘러보는 ‘고스트 워킹’(이주영)을 거쳐 쉼없이 ‘어느 화창한 날, 나는 상처 입었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조은지)는 안내에 따라 열다섯 군데의 집 안을 둘러본다. 철거와 전시가 맞물리는 공간을 거닐다보면 어느덧 아파트 언덕 가장 끝에 있는 ‘너를 우리 집에 초대해’(김화용)에 맞닥뜨린다. 실제 작가의 집이자 전시 공간이 된 2동 한편은, 소녀시대의 브로마이드와 철거되는 옥인 아파트의 잔영들을 담고 있다. 창 너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철거 주역 포클레인이 버티고 있다.
2009년 7월부터 철거 결정과 함께 시작된 ‘옥인아파트 프로젝트’는 집주인 김화용 작가의 초대로 모인 작가 6명이 시작했다. 이들은 ‘옥인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아파트를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해왔다. <옥인 오픈 사이트>는 그 작업의 과정으로 지난 7일 단 하루 공개됐다. <옥인…>에서 작가들은 아파트 주민들의 수십년 삶 속에서 발효된 권리들에 대한 찬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철거 뒤 들어선다는 생태공원처럼, 삶의 구체성보다는 누군가의 ‘견해’가 앞서는 상황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각과 태도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언제 나갈지 모르겠어요. 그때까지는 있어봐야죠.” 김 작가의 웃음은 과거형이지만 철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전시는 미래로 향한다. (덧붙여, 지금도 옥인동 아파트에 가면 남은 전시를 볼 수‘는’ 있다. 볼링공도 그대로다. 다만 실제 철거가 진행중임을 고려해야 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옥인 콜렉티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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