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서울시 종로구의 옥인시범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서울이라는 땅에서 처음으로 홀로 생활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자 햇빛을 볼 수 있는 지상의 작업실을 얻게 된 기쁨을 잠깐이지만 누리게 된 것이다. 이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시내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인왕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산속에 들어온 것 같은 위안을 주는 이 신기한 사각지대 같은 곳에 난 흠뻑 빠져들고 있는 찰나였다.
한강르네상스사업 계획에 따라 한강변의 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마포 용강시범아파트와 서울의 디자인 거리 정책과 맞물려 광화문 경복궁과 청와대를 가까이하는 서촌지역의 인왕산 공원 조성사업 대상지역인 종로 옥인시범아파트가 철거되기로 결정되었다. 제대로! 잘! 녹지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떠나기 싫은 곳이지만 지도상으로 보아도 인왕산 중턱을 가득 침범해서 지어진 이곳이 철거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마치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읊조리는 사람마냥. 하지만 이 철거결정의 사형선고가 아파트라는 공간의 사라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주거권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하찮게 짓밟히는지 직접 체험하게 되는 선고가 될 줄은 미처 그때는 몰랐다. 난 그 후로 2년이 다 되는 시간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일들을 내 몸으로 직접 겪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게 된다. 철거결정, 자포자기, 소송, 구청방문, 면담요청, 거절, 망루, 기자회견, 기습철거, 주민자살, 동절기철거... 그 사이 스쳐갔던 키워드들. 그리고 오늘까지 여전히 진행 중이다.(용강시범아파트와 옥인시범아파트 세입자권리찾기의 과정은 오마이뉴스 <어느 세입자의 '죽음', 그의 처절한 1년_김상철>을 읽어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첫 기습철거가 들어왔던 8월 31일)
(종로구청장 면담 요청이 지속적으로 거절되자 한 세입자 아저씨께서 종로구청이 바라보이는 종로소방서 철탑위에 올라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10월 21일)
(침실 밖 어떤 풍경 1, 상상치도 못하는 풍경이 갑자기 펼쳐졌다.12월 11일)
(침실 밖 어떤 풍경 2)
이렇게 그들이 갑자기 철거를 자행하며 이곳을 폐허로 만들기 전까지는 사실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생기는 빈공간과 남겨진 무언가들을 구경하는 일이 난 꽤나 재밌었다.
누군가 살았던 곳의 흔적은 그 공간의 주인이었던 그를 상상하게 했다. 벽에 그려진 크레파스 그림, 창가 가득히 놓여있던 빈 와인병, 일회용라이터를 모아 놓았던 박스, 한켠에 버려진 90년대 유행하던 가요 테입, 십 수년전 맥주회사 우유회사의 공짜 사은품 컵...
본래의 주인에게는 이제 추억이라기에는 지긋지긋하거나 이제는 내려놓고 싶고 잊고 싶은 기억들의 파편이겠지만 손님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환기시키는 촉매제이고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보물들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예상치도 못한 어느 날 기습철거가 시작되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아직 많은 주민들이 이주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송에 들어갔던 세입자들은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아 기다리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항상 철거되기 전 꼭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60년대 나무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아파트 현판은 몇 초 만에 그냥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눈으로만이 아니라 귀로 더 위협을 주는 것을 알게 된 철거작업의 진행. 모든 유리들이 깨지고 바닥시멘트를 부수는 과정. 이 과정에서 정겨운 시간축적으로 보이던 꽃병, 항아리, 접시, 컵들이 모두 내동댕이쳐져 눈 깜짝할 사이 연약하게 깨져버리고 날카로운 날을 세우는 조각들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한순간에 언제 깨지고 부셔져 버릴지 모르는 신세가 된 그 물건들과 나, 나는 망루에 오르더라도 이 아이들은 망명시켜야겠다. 그렇게 문래동으로의 망명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연약한 것들의 이동)
----이 과정에서 정겨운 시간축적으로 보이던 꽃병, 항아리, 접시, 컵들이 모두 내동댕이쳐져 눈 깜짝할 사이 연약하게 깨져버리고 날카로운 날을 세우는 조각들이 되어버렸다.---- 이부분이 참 좋아요. 용강 시민아파트나 옥인아파트에 여전히 남아 날카로워 지는 세입자들이 연상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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