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생태건축, 그 가능성을 찾아서 25

친환경 저층아파트 시대를 연다
‘옥인동 재개발’ 프로젝트

지은 지 수십 년 된 노후 주택으로 가득 찬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47번지 일대(옥인제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가 저층의 친환경 아파트 단지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
그 동안 도심재개발이 고층아파트 일색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과 달리, 건축가 김원(65)씨가 설계한 옥인동 재개발 주택은 5층 저층 공동주택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성을 맞춘 것은 물론, 주거의 쾌적성과 건축물의 친환경성, 주변 도시의 미관을 고루 충족시키는 새로운 대안주택으로 주목받고 있다.

취재/ 구선영 기자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서 노후된 주택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재개발ㆍ재건축이 한창이다.
현재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이뤄지는 대대적인 개발사업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도시가 나이를 먹을수록 대상지도 늘어나는 추세다.
2007년 한해 서울에서만 70여개 지역이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성남, 인천, 대구, 부산 등 대다수 도시들이 매년 새로운 정비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문제는 재개발 주택의 모델이다.
그동안 노후ㆍ불량주택들이 헐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고층의 아파트 일색이었다.
최근에는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들어선 고층의 아파트단지들이 도시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도시의 모습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주요인으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성을 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로 고층아파트를 대신할만한 모델을 찾지 못했던 게 우리의 실정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재개발=고층아파트’라는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주택모델이 서울시 도시ㆍ건축 공동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주목을 끌었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47~64번지 일대 ‘옥인 제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의 설계안이 그것이다.
국 내 중진 건축가인 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씨가 설계한 이들 주택은 5층으로 이뤄진 저층임에도 불구하고, 한가운데 코어를 중심으로 십자(+)구조로 세대를 배치해 모든 세대에서 채광과 전망을 누릴 수 있게 했으며 지형에 순응하는 단지개발로 토목 공사비를 낮추는 등, 다양한 설계 특화로 사업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또한 환경친화적인 철골구조로 구조를 만들고 나무(적삼목)를 외장재로 사용해 아파트 같지 않은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밖에도 세대마다 3㎾의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해 국내 최초 ‘전기요금이 나오지 않는 아파트’를 실현시키는 등 환경아파트의 새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내놓았다.



‘십자형 구조’로 사업성, 조망권 고루 해결

‘인왕산 아래 동네’로 불리는 종로구 옥인동은 인왕산이 뒷마당처럼 위치하면서 낙산, 북악산, 남산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옥인제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47번지 일대에는 노후 단독주택(182세대)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지난해 11월 재개발 설계안이 심의를 통과해 올해 2월 조합승인과 연내 공사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옥인동 재개발사업은 오랜 진통 끝에 성사됐다.
옥인동은 지난 30년간 자연경관지구로 묶여 개발이 엄격이 재한돼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자연경관지구 일부해제와 2종 일반주거지역 변경 등으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다.
당시 현대, 삼성 등 내놓으라 하는 주택건설업체들이 찾아들었다가 사업성이 맞지 않아 퇴진한 곳이기도 하다.
애가 탄 주민들이 같은 동네주민이자 건축가인 김원 씨를 찾아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청사진 그리기에 돌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성이었다.
대지 모양이 찌글찌글하고 경사가 져서 기존 공동주택 모델로는 좀처럼 세대수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숫 한 고심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십자형(+)구조’다. 한가운데 코어를 중심으로 4세대가 현관과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며 둘러싸여 한 동을 이루는 십자구조는 어떤 땅이든 그 모양에 맞게 돌려 앉힐 수가 있어 토지이용 효율성 면에서 유리하다.
십자형 구조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전 세대 3면 발코니 설계로 북악산, 남산, 인왕산 등 3면 조망이 가능해지며, 십자 형태의 주거동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면 동과 동 사이의 시각축도 확보되어 답답함을 면할 수도 있다.
설계 도중 건축높이 규제가 7층까지 풀렸지만, 김원 씨는 5층에서 멈추고 주민들과 시공사를 설득했다.
경관성과 주거의 쾌적성,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두루 살리기 위한 선택이자, 이를 통해 저층의 도시형 고급 타운하우스 이미지를 부각시켜 사업성도 맞추자는 전략에서다.
주변경관이 양호한 점을 이용해 옥상층 세대에는 넓은 전용 하늘마당과 다락방을 주어 펜트하우스처럼 꾸밀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14개동 310세대가 옥인1구역 설계안에 자리를 틀게 된다.
유니트는 108㎡(32평형) 250세대, 155㎡(46평형) 20세대, 204㎡(61평형) 40세대로 구성됐다.
단지 개발 방식에도 아이디어가 물씬하다.
구릉지 형태의 기존 대지 레벨을 기준 삼아 주변지역과의 단차 발생을 최소화하는 개발방식을 택해, 공사비도 낮추고 불필요한 환경파괴도 줄이며 경관성까지 살리는 3가지 효과를 챙겼다.
단지는 크게 5단계 레벨로 나눠지고 그 위에 주거동이 앉혀진다.
레벨마다 생기는 단차에는 데크마당을 깔고 주거동 진입홀을 만들며, 진입홀을 통해 다음 레벨의 데크마당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하면 단지 내 보행 흐름이 막힘없이 연계된다.
데크마당 아래에는 지하2층 규모의 주차장이 형성되는데, 단지 내 주차장의 동선 또한 모두 연계되도록 설계했다.

친환경 구조와 자재, 대체에너지 사용 ‘환경아파트’로

옥인1구역 재개발아파트는 재활용이 가능한 철골조로 지어진다.
벽체는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며, 바닥에만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층간소음 때문이다.
외장재 또한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와 친환경자재로 손꼽히는 목재가 사용된다.
3면 유리를 적용하고 유리 위에는 나무로 만든 덧문(상하 자동 개폐형)을 달아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계획이다.
유리를 제외한 모든 외벽에는 썩지 않는 적삼목을 붙인다.
광장건축은 캐나다 주택청을 직접 방문해 캐나다산 레드시다(적삼목)공급을 요청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밖에 각 세대마다 3㎾의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 전지판을 세우는 계획을 설계에 반영했다.
‘전기료 안 나오는 아파트’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90%까지 설치비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지판이 세워지는 지붕 형태는 인왕산의 경사를 따라 흐르게끔 설계했다.
4개의 전지판이 십자형 구조 위에 얹혀지고, 한가운데 공용전지판이 세워진다. 단지 내를 지나는 인왕산 물줄기 복원 계획도 세워놓았다.
이 물줄기는 청계천의 원류이기도 하다.
묻 힌 물길을 되찾아 저류해 두었다가 청계천까지 갈 수 있는 날을 기약하겠다는 것. 옥인1구역 재개발사업은 “인왕산과 북악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저층 주택 지대인 옥인동에서 고층아파트는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본 중진 건축가의 의지와 지혜가 현실화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옥인동 사례는 앞으로 도심 내 주거지의 재개발ㆍ재건축사업에 영향을 끼치며 새로운 대안모델로 활용될 전망이다.
여 러 자치단체에서 옥인동 주택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경우 앞으로 노후 단독주택과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을 재건축할 때 5~7층 높이의 저층도시형 타운하우스 형태로 짓도록 한다는 방침을 내놓고 주택모델 개발에 나서는 등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주택저널, 200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