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0 August 2009

[스크랩]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아니라 비해당(匪懈堂)^^

구룡초부 블로그의 무계정사(武溪精舍) 글에서 부분 발췌해서 가져왔삼.

고서에서 찾아보는 이동네~^^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터를 찾은 것은 작년 (2007년) 여름이지만
사진만 찍고 그 동안 미루다가 지금에야 글을 만들어 붙인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어딘가에 이상향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왔다.
옛날 중국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근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리라(Sangri-La 香格里拉)가 대표적 예다.
조선 초기 어느 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카피본 같은 꿈을 꾼다.

정묘년 (1447년, 세종 29년) 4월 20일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뜩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문득 보니
인수 박팽년(仁? 朴彭年)과 함께 어느 산 아래에 다다랐는데, 겹친 봉우리는
험준하고 깊은 골짜기는 그윽하였으며 복사꽃 핀 나무 수십 그루가 서있었다.

오솔길이 숲 가장자리에서 밖에 두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시골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나왔다.
그는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바로 도원입니다 ' 하는 것이었다.

인수(=박팽년)와 내가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 보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수풀은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또 시내가 굽이지고 길은 꼬불꼬불하여 마치
백 번이나 꺾여 나간 듯 곧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서 족히 2, 3리는 될 듯 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 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양 자욱했다.
또 대나무 숲 속에 띠풀 집이 있는데 사립 문은 반쯤 닫혀 있고 흙 섬돌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이며 개, 소와 말 따위도 없었다.

앞 냇가에 조각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중략(中略)

그리하여 가도 안견(可度 安堅)에게 명하여 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일러오는 도원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니, 이 그림과
같은 것일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보는 사람들이 옛 그림을 구해서 내 꿈과
비교해 본다면 반드시 무어라 할 말이 있으리라. 꿈꾼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림이 다 이루어졌으므로
비해당(匪懈堂) 매죽헌(梅竹軒)에서 쓴다.

아래는 위 내용을 적은 안평대군 친필이다. 대군이 명필로 이름났지만
계유정난(癸酉靖難) 후 역적으로 몰려 죽어 남은 글씨가 많지 않다.




끝에 비해당(匪懈堂) 글자가 있다. 말미에 또 적지만 비해당은 옥인아파트
부근에 있던 안평대군 살림집이다.
깨어난 대군(大君)이 안견(安堅)에게 꿈에서
본대로 그리라 하여 사흘 만에 완성했다는 것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사진: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년(세종 29) 작.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106.5×38.7 cm, 어떻게 국외(國外)로 나갔는지,
지금은 일본 천리(天理)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무리 이름 높은 ‘몽유도원도’ 라고 한들 인터넷에서 퍼온 우표보다 약간
큰 사진가지고는 실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아래 평(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두루말이를 여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全景)에
압도된다. 마치 궁중아악(宮中雅樂) 수제천(壽齊天)의 시작을 알리는 전경에
박(拍) 소리가 그치자 모든 악사들이 일제히 강박합주(强拍合奏)로 장엄한
첫 음을 울리는 것처럼 안개 자욱한 무릉도원은 꿈결같은 향기를 온 누리에
퍼뜨리며 화평한 기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빨간 복사꽃잎의 꽃술에는
금가루가 반짝이고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 싼 기괴한 봉우리들은 각광(脚光)을
받아 얼비친다. 아래가 밝고 위가 어두운 봉우리 봉우리는 신비롭기가 그지 없으니
분명 현실세계가 아닌 신선의 경계다...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권 1) p 56-58 중 안견의 몽유도원도


꿈보다 해몽이 좋은지 ? ‘얼쑤’가 있은 연후에 비로소 소리에 흥이 나는지?
아마추어들에게 이렇게 발림과 추임새를 해 주는 것이 전문가 역할 아닐지?
이 미려한 필치의 오주석 씨는 학문이 막 무르익을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몽유도원도는 한 편의 장대한 교향시다. 작품의 기본축은 오른편 위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가로지르는 호쾌한 대작이다. 그리고 보조축으로 오른편
아래에서 왼편 위쪽을 향해 점차 상승하는 대각선이 교차된다.- 오주석


아래는 몽유도원도의 오른 편 도원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인터넷이 아니라
종이 책에서 스캔 했으니 위 전도 보다 낫게 보일 것이다.




화면 상부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기암(奇巖)으로 환상을 극하는 절경의 분위기를 내고
몸이 하늘에 떠서 내려다본 듯이 도원 전체를 폭 넓게 조망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드넓은 도원의 동시묘사는 과연 천재에게나 가능한 경지리라.
오른 편 위쪽에는 아담한 집이 세 채 보이고 한중간에는 빈 배가 물가에서 출렁인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자욱한 안개 속에 화사한 복사꽃이
오히려 너무 고와 서러울 지경이다, 이 적막하고 아득한 경지를 보노라면
안견은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그 궁극에서 비애감으로 이어진다' 는 진리를
익히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오주석

무계정사 (武溪精舍)

안평대군은 자신이 꾼 꿈을 안견을 시켜 그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무계정사 (武溪精舍)라는 도원경을 본뜬 별장을 실제로 지었다고 한다.

…이개(李塏)가 1451년 (문종 1년)에 쓴 무계정사기(武溪精舍記)에 의하면,
무계는 한양성 북문 (즉 창의문)밖 백악산(白岳山) 서북쪽 산기슭 지금
종로구 부암동 329의 4번지 일대다.


중략

(살림집보다 별장이 더 뷰가 좋은곳이었겠지만서도 별장 부암동 이야기는 중간생략 ^^)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의 별장이었고 대군의 살림집은 따로 성안에 있었으니
지금 옥인아파트 근처로 당호(堂號)가 비해당(匪懈堂)이었다.


비해당(匪懈堂)

아닐 비(匪) 게으를 해(懈)니 게으르지 말라는 뜻으로 세종대왕이 직접
시경 증민(蒸民) 편에서 두 글자를 따 지어 주었다고 한다.

숙야비해 이사일인 (夙夜匪懈 以事一人)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임금) 한 분만을 섬기네.

행여 한눈 팔지 말고 형님-다음 대 임금(문종)을 지성으로 섬기는 데만 정신을
쏟아라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뜻이야 어찌되었든 금지옥엽(金枝玉葉)
귀하디 귀한 왕자의 몸으로 시서화 또한 당대 제일이던 안평대군에게 어울리게
저택이 빼어났다고 한다. 그 저택 비해당(匪懈堂)은 지금 옥인아파트 자리로 추정한다.

…..그의 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는 뜻의 수성동(水聲洞) 기린교(麒麟橋)
부근에 따로 있었다. 수성동은 옥인아파트 자리라고 추정되는데
, 1960년대에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기린교를 없앴다고 김영상 선생이 증언하였다.
서울신문 연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허경진) 중에서




사진: 옥인아파트 앞
지금 겉모습으로는 도저히 ‘시내와 바위의 빼어남’ 과 연결이 안 된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 인왕산에서 내려 오는 냇물과 바위에서 상상력을
극도로 발휘하면 옛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사진: 옥인아파트 단지 내 냇가 바위.
아파트와 시멘트 등 구조물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래도 어려우면 겸재의 그림을 통해 그려 볼 수 밖에.




수성동(水聲洞), 영조 27년 (1751) 경,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종이에 엷은 채색, 29.5 x 33.7 cm, 장동팔경첩 간송미술관 소장

….둥근 바위 벼랑이 내려와 우뚝 멈춘 아래에 널찍한 평지가 있고
그 앞뒤로는 수직의 바위 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평지 아래로는
계곡 물이 힘차게 흐른다. 인왕산 동쪽 기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터전은 남향집을 지을 수 있는 집터였을 듯하다. 물론 동향을 한
사랑이나 누각 위에서라면 경복궁을 비롯한 한양 도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 소리가 마당 가에서 여울지고
솔바람이 밤낮없이 송뢰(솔바람소리)를 일으키며 흰 빛 바위가 사시장철
청결 고아한 자태로 (*)울싸주는 곳이니 바로 선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겸재의 한양진경(최완수) p21

(*)울싸주는 : 귀에 설어 사전을 찾았는데 나오지 않는다. 문맥상 ‘얼싸다’
정도의 뜻인 듯. 최선생이 새로 만든 말이거나 선생의 고향-충남 사투리 일지도.





사진: 옥인아파트 일대를 구글에서 잡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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